해외여행

혼자 떠난 여행#2 간사이지방(오사카, 교토, 고베) 에피소드1

삐딱한장관 2023. 2. 15. 21:22

2004년 여름.
해가 저물어가는 여름날의 초저녁.
오사카 어딘가의 골목(어딘지 모름) 친구들과 나는
숙소를 잡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었다.
맞다. 길을 잃은 것이다.
파출소,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봐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가타카나, 히라가나도 모르는 4인은 처음의 패기는 오간데 없고,
얼굴빛이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길을 지나던 건장한 일본 중년을 만났다.
은인이었고, 일본 여행을 인생 최고의 추억으로
만들어준 그분.
"오가와상"
"따라와 따라와, 괜 자나 괜 자나, 아죠씨가 아죠씨가" 정확하진 않지만
한국말을 하는 오가와상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저씨를 따라 무작정 일본 택시에 몸을 실었다.
낯선 중년을 따라가는 건 떨리기도 했고,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타국에서의 방황이란 그 당시만 해도 큰 공포였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오사카 어느 동네 돈키호테 앞에 내려서, 아저씨를 따라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길이 어둡고, 앞장서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저씨를 따라 걸으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순간 "아저씨~~~!!" 한국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 친구들이 많은 일본 아저씨였다.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던지, 주저앉을뻔했다.

아저씨 아파트에 들어서니 부인과 아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우리와 동갑이었고, 공부를 위해 도쿄로
유학을 갔고, 뒷바라지를 위해 부인도 함께 갔것이었다.
아들과 또래의 한국 대학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전화기를 건재주는 것이
아닌가!
어? 전화기는 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모시모시" ㅋ
전화기 너머로 한국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한국 대학생들이죠?" 휴~~!!
여러 가지 물음에 대답(먹고 싶은 거 등등)하고
아저씨를 따라 길을 나섰다.

먼저 도착한 곳은 로컬 초밥집!
배도 고팠는데 일본에서 장인의 초밥이라?!
상상이나 해봤던가! 정말 맛있었다.
초밥에 아사히 생맥주 한잔! 크~! 극락이었다.

초밥의 여운을 뒤로한 채 오사카의 사우나로
향했다. 여름철 땀을 한 바가지 흘린 우리를 위한
아저씨의 배려였다.
일본은 사우나와 목욕의 개념이 구분되어 있었다.
사우나는 수영복을 입고 탕과 사우나를 사용했고,
그 공간에는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음료 서빙을
하고 있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돈이 없던 학생 시절이라 그때 마시지 못한
음료수가 너무 생각이 난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셨다.
아저씨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큰 용이 간판에
날아다니고 있는 "긴룡"
일본의 길거리 프랜차이즈 라멘 집이었다.
목욕 후 길거리에서 먹는 라멘 한 그릇 또한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 맛이다.

다음날부터 아저씨와 함께 일본 여행을 시작했다.

#교토
교토는 한국의 경주와 흡사한 도시로 유적지가
많아 지하철이 없는 도시였다.
교통이 불편하다며 함께 여행을 다니자고 하셨다.
금각사 - 은각사 - 아라시야마 - 청수사 - 니조성
(여행 순서는 아님)
교토의 길거리, 풍경, 건물들 모두 정통 일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교토 여행이 가장 좋았다)
특히, 청수사!
청수사에는 3가지 물줄기가 있다.
건강, 사랑, 학문!
한 가지를 선택하여 마시면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최대 2개까지 마실 수 있고, 3가지를 다 마시면 오히려
운수가 나빠진다고 전해진다.
(한국사람 구별법 : 물 3개를 썩어서 마심 ㅋㅋㅋ)
아저씨의 가이드 덕분에 이틀 동안 구석구석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일본 동네 어르신들과 친구가 되었고,
단골 로컬 커피숍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본 문화를 체험했다.
(한국 대학생이라고 구경 오시는 게 신기)

같이 여행하는 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아저씨를 보며 의아했는데, 당뇨라 식사를 아무거나
못 드신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건강도 걱정되어서 다음날부터 우리끼리 여행을 다녔다.

#나라
사슴의 천국! 나라!
별다른 감흥과 느낌이 없었다.
클락션 소리 하나도 안나는 곳이라 신기했다.

#고베
어렵게 어렵게 물어가면서 여행을 다녔던 곳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다.
고베 대지진의 메모리얼파크, 하버랜드,
아카시해협대교, 비너스 브리지 등
화려하진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야경.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도시.
여행을 마치고 고베역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첫날 만났던 이모님에게
연락을 했다.
첫 날 이모님이 일본 사람들은 앞에서는 친절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문화라고, 아저씨 집에서 오래
머물면 민폐이니, 본인이 다니는 교회 청년부 숙소를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급작스런 교회 행사로 청년부 숙소 이용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내받은 지인이 운영하는 스파랜드!
일본 여행의 클라이막스가 기다리고 있는 찜질방이다.

#오사카
스파랜드로 숙소를 옮긴다는 이야기에
아저씨가 따라오라고 했다.
집 앞에 있는 돈키호테에서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 아저씨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가 손수 만들어주신 샤브샤브는 일품
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스키야끼 같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다.
우리도 아저씨가 준비한 선물을 받고 보니
부모님 선물이었다.
일본에서 유명한 샴푸와 간장.
아저씨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우리 모두
펑펑 울었다.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스파랜드
한국실 찜질방인 스파랜드.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첫날 한국인 마사지 아저씨와 맥주를
한잔 하게 되었다.
찜질방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일본여성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그중 한 여성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일본에서 엄청 유명한 개그우먼이였다.
(그 당시 한국으로 치면 조혜련급이였음)
우리는 일본 여성에 대해, 여성분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서로 물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쁜 여성이 있었는데, 황토색 옷에
꾸미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바보처럼 보였는지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하는 우릴 거절했다.
그날 저녁 아저씨와 헤어지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일본 여성이 또 찜질방에 왔다.
흡연장소에서 친해진 우리는 술파티를 벌였다.
그녀는 바에서 일하는 20살 여성이었고, 집이 멀어
첫 차를 기다리기 위해 찜질방에 왔다고 한다.
너무 착한 동생이었고, 술을 사 오는 우리에게
만엔을 건내며 본인도 술 값을 내겠다고 한다.
마음씨도 착하고, 하는 행동도 예뻤던 여성이었다.
대화도 안 통하는데 뭐가 그렇게 즐거웠던지...
그 동생은 내일도 와도 되냐고 질문했고,
0.00001초의 초사이언 반속으로 "ok"를 외쳤다.

다음날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어제 술을 마실줄 모른다던 일본 여성을
숙소 앞 편의점에서 마주쳤다.
남성과 대화 중에 우리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boyfriend?" "no, just business partner"
그러면서 숙소에 놀러를 오겠단다.
술도 못 마신다고 튕기더니.....
그래도 참 이쁘게 생긴 아이였다.

씻고 찜질방에서 뒹굴고 있는데
바 알바생 동생이 왔다.
진짜 올 줄이야!
또 맥주 파티가 열렸다.
튕기던 여성도 왔다. 빵까지 구워서 ㅋ
바 동생과 팅기던 여성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흥미로웠다 ㅎ
우리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즐거웠지만 ㅋ
그렇게 놀고 있는데, 일본 여성들이 더
입장했다.
"조카와 이모" 그런데 친구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본문화.
한국남성 4명, 일본여성 4명!
맥주 파티를 벌이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이상한 낌새를 차린 사장님이 불쑥
올라왔다.
"너희들! 마시는 건 좋은데 이상한 짓 하지마!"
"네, 물론이죠!"
사장님의 어름장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일본 여성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일본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출국 전 오가와상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었던 일본여행.
친구가 큰 누나에게 몰래 연락을 하여,
나랑 함께 일본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고,
누나의 지원 덕분에 평생에 기억에 남을
추억을 일본에서 만들고 왔다.

대학생 때 일본은 너무 선진국이고,
맛있는 음식이 지천에 깔렸지만, 가난한
대학생이기에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른이 되면 다시 돌아오리라 결심했다.

그러고, 정확히 12년의 시간이 지났다.
2016년 여름 나 홀로 오사카 여행이 시작된다.
리마인드 여행.